[매경이 만난 사람] 토드 마코버 MIT 미디어랩 교수, 원형준 린덴바움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최종 수정일: 2020년 11월 3일


`남북 교향곡` 시민과 함께 만들어 세계에 `평화` 퍼뜨릴게요


디트로이트·에든버러 등서

시민참여 `시티 심포니` 작업

세계적 작곡가 마코버 교수


판문점서 베토벤 교향곡 연주

바이올리니스트 원 감독과

美영화제서 만나 의기투합


연말 서울·평양 연주회 추진

美LA·뉴욕·워싱턴서도 공연

내년 남북교향곡 완성 목표


토드 마코버 MIT 미디어랩 교수(왼쪽)가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원형준 린덴바움 오케스트라 음악감독과 2020년까지 완성할 `남북 교향곡`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재훈 기자]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는 MIT 미디어랩이라는 세계적인 미디어 융합 기술연구소가 있다. 이 나라 미디어 학자로서 멀티미디어 개념을 처음 제시한 니컬러스 네그로폰테, 인공지능(AI) 기술 창시자 마빈 민스키 등이 미디어예술과 과학 간 융합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1985년 세웠다. 터치스크린, 위성항법시스템(GPS), 웨어러블 등 혁신기술 상당수가 이곳을 거쳐 탄생했다. 이 연구소엔 수많은 연구집단이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게 '미래의 오페라(The Opera the Future)'다. 음악과 퍼포먼스 등 시청각 예술에 테크놀로지를 입힌 신개념 공연을 올리는 곳으로, 세계적 작곡가이자 연출가인 토드 마코버 MIT 미디어랩 교수(63·학과장)가 이끌고 있다.


마코버 교수는 지난 몇 년간 도시의 정체성이 깃든 소리를 교향악에 담아내는 '시티 심포니(도시 교향곡)' 작업을 선보여 세계 각지에서 화제를 모았다. 첼리스트 요요마,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과 작업해왔으며, 그가 만든 오페라 '죽음과 힘'은 2012년 퓰리처 음악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그런 그가 올해부터 '남북 교향곡(Symphony for the Koreas)' 프로젝트에 착수한다고 선언해 주목을 끈다. 2020년까지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바이올리니스트 원형준 씨(43)가 예술감독으로 있는 린덴바움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이하 린덴바움)와 공동 추진한다. 린덴바움은 국내 청소년들에게 오케스트라와 앙상블 교육 등을 제공하는 단체. 마코버 교수가 아시아 예술집단과 '시티 심포니' 작업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마코버 교수와 원형준 감독을 함께 만났다. 훤히 드러난 이마에 양옆으로 부푼 곱슬머리, 뿔테 안경을 쓴 마코버 교수는 "거의 전 나라를 누벼왔지만 한국은 그러지 못했다"며 "남북한 합동 오케스트라를 선보여 '남북 간 화합'이라는 평화적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하겠다"고 했다.


―마코버 교수는 한국에 처음 방문한다고 들었다.


▷마코버=4박5일 일정으로 일요일 아침(17일) 도착했다. 이번에 한국에 온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는 서울과 한국 전반에 대한 인상과 경험을 가져가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남북 교향곡' 프로젝트를 어떻게 착수할지 논의하기 위해서다. 셋째는 19일 저녁 린덴바움 예비학교와 서울드와이트 외국인학교에서 강연이 있어서다. '지역사회와 도시, 국가를 연결하는 음악적 창의성'이라는 주제로 '남북 교향곡' 취지와 방향을 설명하려 한다.


―두 분은 언제 처음 만났나.


▷원형준=2009년부터 린덴바움에서 남북한 평화 증진을 위한 음악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인종과 국적, 정치의 벽을 넘어 진정한 화합과 소통을 모색한다는 취지다. 매개는 음악인데, 이를 통해 남북 간에 평화적 울림을 전하는 게 목표다. 그 일환으로 2015년 추진한 프로젝트가 있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판문점에서 북한 합창단과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하는 것이었다. 애석하게도 북한 측과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고 진행 과정을 카메라로 찍은 18분짜리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38선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한다는 뜻의 '9 at 38'이라는 제목을 붙인 작품이다. 이걸 2017년 미국 '하트랜드 필름 페스티벌'에 출품해 운좋게 초청받았는데, 현지에서 마코버 교수의 다큐멘터리 '심포니 디(Symphony D)'를 만났다. 그해 에이미 다큐멘터리상 수상작이다. 이걸 보고 '아, 마코버 교수와 함께라면 남북한 오케스트라를 만들어볼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섰다. 그렇게 연락을 했고, 지난해 4월 미국 MIT에서 그를 만나 올해부터 공동 프로젝트를 하기로 확정했다.


―'심포니 디'는 '시티 심포니' 프로젝트를 담은 영화라고 들었는데.


▷마코버=그렇다.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시티 심포니' 작업을 하는 과정을 카메라로 찍었다. 자동차 산업이 망가진 디트로이트에서 도시 교향곡으로 도시 재건을 도모한다는 취지였다. 디트로이트에 있는 시민들과 사물과 환경 소리를 수집하고, 폭넓은 이야기를 나눠 이를 '디트로이트 심포니'로 완성시켰다. 2015년 11월 레너드 슬래트킨 지휘로 대중에게 선보였던 작품이다. 이것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하트랜드 필름 페스티벌에서 틀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원 감독에게서 연락이 왔다. 당신과 '남북 교향곡'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그래서 바로 수락했나.


▷마코버=물론이다. 한국에 있는 다양한 문화와 소리를 탐구해볼 더할 나위 없는 기회이지 않나. 지난 30여 년간 나는 순전히 예술적인 맥락에서 음악의 힘을 증진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그 일환인 '시티 심포니'도 디트로이트, 마이애미, 토론토, 에든버러 등 각 도시 시민들과 함께하는 참여형 프로젝트였다. 도시의 모든 소리를 활용해 그 장소의 영혼을 널리 알리려는 작업이다.


―'남북 교향곡' 프로젝트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있게 지난 작업을 부연해달라.


▷마코버=우선 나의 철학이 '음악을 통한 연결'이라는 점부터 언급해야겠다(미국 현지 언론이 부르는 그의 별명은 '미국과 가장 연결된 작곡가'다). 음악은 내게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도시, 도시와 도시를 연결해주는 이음줄이다. 거기에 MIT 미디어랩의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매우 효과적인 도움이 돼준다. 이를테면 연령과 배경에 상관없는 다양한 인물의 목소리와 도시 소리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과 최신 미디어 테크놀로지 등으로 연결된다. 지난해 4월 뉴욕 카네기홀에서 선보인 '필라델피아 목소리들' 무대가 한 예다. 필라델피아의 무수한 소리를 수집해 우리 테크놀로지로 오케스트라를 완성했다. 이 작업엔 꼭 수준 높은 음악가만 참여하는 게 아니다. 이제 막 음악을 시작한 신진들도 테크놀로지를 매개로 교감한다.


▷원형준=부연하자면 마코버 교수가 수집한 도시 소리들로 작곡을 하면 이를 시민들에게 보여준다. 그들에게 피드백을 구하고 '하이퍼스코어(Hyperscore)'라는 그가 발명한 소프트웨어를 매개로 교향곡을 함께 완성해나간다. 하이퍼스코어라는 기기를 쓰면 음악 전문가가 아니어도 자기 곡을 만들 수 있기에 전문가와 시민이 협업할 수 있다. 이번 남북 교향곡 또한 이런 식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북한을 끌어들일 수 있을까.


▷원형준=우선은 상반기 중으로 북한 문화상 관계자와 미팅을 하기로 확정됐다. 구체적인 논의는 그때 하게 될 것 같다.


▷마코버=넘어야 할 산이 높을수록 더 많은 도전의식이 생긴다. 북한 음악계와 꼭 함께하길 바라고 있다.


―미국 주요 도시의 소리를 채집해온 경험과 비교해 서울의 소리와 공간은 어떻게 다가오던가.


▷마코버=이제 2~3일 둘러봤지만 대단히 신비롭다. 원 감독과 남대문시장을 갔는데 물건을 사고파는 재래시장의 북적거림이 무척 인상깊더라. 게다가 도시의 구조 자체도 흥미롭다. 서울은 매우 복잡한 도시이지만 좁은 골목이 많은 것 같다. 귀가 예민한 나로서는 세 블록만 가도 소리가 다르다. 굉장히 다이내믹하달까. 골목마다 소리가 주는 느낌이 다르다. 도로 또한 그렇다. 차가 지나가고 오토바이 소리가 이따금 들려도 상대적으로 고요하다. 하지만 실내로 들어오면 완전히 다르다. 굉장히 다양한 소리가 공간을 가득히 메우고 있다. 오전에 이태원 주변을 걷다 공사 터를 마주쳤다. MIT의 경우 공사를 하면 쾅쾅대는 소리가 굉장히 시끄러운데, 여기는 공사 소리마저 얌전하다. 공간 자체도 새롭게 다가온다. 뉴욕의 센트럴파크나 런던 하이드파크 같은 곳을 누빌 때와 달리 갑자기 공원이 나타나고 돌연히 자연적인 경관이 등장한다. 이런 예상하기 힘든 돌출성이 도시에 색다른 조화를 부여한다.


―서울을 이런 시각으로 봐준 사람은 처음인 것 같다.


▷마코버=그동안 거의 모든 나라를 누볐다고 자부하는데, 서울은 치밀하게 계획되지 않은 도시 같다는 점에서 굉장히 이색적이다. 19세기 파리나, 사전에 공부해본 북한의 평양이 매우 구조화된 도시라는 점과 대별된다. 비유하자면 불규칙한 산맥 같달까. 큰 산, 작은 산, 큰 봉우리, 작은 봉우리가 불규칙하게 끝없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개성미가 있다. 나는 이런 서울의 풍경을 면밀히 탐사해 그 소리들을 수집할 계획이다. 다음 방문에는 며칠간 목적지 없이 서울 곳곳을 방황해보려 한다. 그렇게 탄생할 '남북 교향곡'이 어떤 느낌으로 탄생할지 정말이지 기대된다.


―이번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진행 계획과 자금 조달 방법은 어떤가.


▷원형준=우선 마코버 교수와 올여름 워크숍을 열려고 한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시민을 모아 그들을 상대로 하이퍼스코어 사용을 적용해볼 것이다. 이르면 올해 12월에 서울 평양에서 연주회를 여는 것도 희망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 LA, 뉴욕, 워싱턴DC의 주요 홀에서도 남북 교향곡을 론칭할 계획도 있다. MIT 미디어랩은 글로벌 기업들에서 연간 수백만 달러 후원금을 유치해 공동 연구 성과를 내는 만큼 이번 프로젝트에 관심 있는 기업들 후원을 유치하는 방법도 고려 중이다.


―이번 프로젝트로 기대하는 게 있다면.


▷원형준=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마코버 교수가 한국적 상황과 정서에 관심을 가져줬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이다. 토론토 심포니 작업을 통해 토론토가 세계에 더 알려졌듯, 우리 분단 상황을 담은 이번 '남북 교향곡'으로 한국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길 바란다.


▷마코버=내년에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아시아 를 넘어 세계의 많은 관심이 집중될 것이다. 한반도 전역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더 깊은 관계를 만들고 평화와 소통의 메시지를 울려퍼지게 하겠다.



▶▶ 토드 마코버 교수는…

△1953년 미국 뉴욕 출생 △1971년 캘리포니아대 △1973~1978년 줄리아드 음대 학사 및 석사 △1985년 MIT 미디어랩 음악 및 미디어 교수 임명 △2006년 런던 왕립음악원 구성학과 초빙교수 △현재 MIT 미디어랩 학과장·작곡가


▶▶ 원형준 음악감독은…

△1976년 서울 출생 △1990년 동·서독 통일 주제로 다보스 세계경제포럼 초청 연주 △1995~1998년 줄리아드 음대 수학 △현재 린덴바움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음악 감독, 하버드대 커클랜드 하우스 명예위원



2019.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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